Sweet dreams * V



130.3 x 162.2 cm



oil on canvas / 2011



  



Beautiful, Ethereal, and Atmospheric portraits


최근 극사실적인 그림의 작가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그림을 극사실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강하게 부정한다.

그것은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진 보수적 기법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것, 보이는 대로 그리기보다는 상상력과 변형
연출을 동원해 이전의 사실주의 그림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며,
피상적으로는 대상과 닮아 보이는 그것이 실제로는 허구의 이미지로 가득한 거짓의 세계, 이른바 시뮬라크르(simulacre)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실재 그대로의 반영물이 아니다. 아니, 아예 반영물일 수가 없다.
실재 그대로의 영락없는 닮은꼴이야말로 알고 보면 이미지의 함정일 수 있다. 이미지는 실재를 변질시킨다. 

이미지는 실재보다 화려하고 감각적이고 매혹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재보다 이미지를 더 친근하게 느끼고, 그런 만큼 실재는 이미지로 대체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순수함과 에로틱함을 모두 보여주기도 하고 매력적이면서도 왠지 모를 이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에스키스 단계에서부터 수십장의 디지털 이미지를 발췌, 조합하여 하나의 도상으로 빚어낸 
응축된 이미지는 자연의 형태를 모티브 삼아 식물과 인체의 유연하고 유동적인 곡선·곡면형태의 유기적인 사용으로
도시적 분위기가 제거된 탐미주의적인 몽환의 이미지,
 생화를 흉내 낸 조화의 생기발랄한 이미지의 유혹적인 자태가 주는 감각적 쾌감을 자아낸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려낸 이미지는 또 다른 실재며 그 자체 자족적인 실재로서 제시된다.
집요한 그리기는 조형예술의 요체에 대한 근본적인 집중을 의미한다. 즉 지난 과정의 노고가 집약된 수공 성을 담보한 작품이다. 

현대사회가 첨단기술을 강화할수록, 예술은 더욱 앞선 과학기술의 메커니즘을 이용하거나, 
혹은 정반대로 매우 수공 적이거나 노동집약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사물의 표면을 열심히 따라가 보는 그리기이자 사물의 질감에 대한 편집증적 편애와 오로지 표면만을 애무하는 그리기는 
회화의 본질적인 영역일 수밖에 없다.

이는 사물의 감각적인 질감을 가지고 유희하는 일이고 그것들과 한 몸으로 접속되는 일이다.
첨단 기술이 동원되고 순식간에 똑같은 질의 이미지가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에 
미술의 가장 오래된 본성을 부활시키고 있는 동시대 회화의 존재 이유와 특성들에 대하여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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